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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하이엔드 음향기기 회사들 흥망성쇄

AdultKid(오디오/스피커) 2012. 2. 22.

펌 http://blog.naver.com/bsdevil?Redirect=Log&logNo=60148943637  

산수이(山水)를 아시나요?
 

이젠 거의 심드렁해졌습니다만, 한동안 오디오 나부랑이질 제법 빡세게 했더랬습니다.  서울 올라와서 한 일년 가까이 뭘 해먹고 사나 싶어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려보다가, 제법 그럴듯한 직장에 취직을 하고...  뭔가 경제적으로 안정된 바탕에 올라타나 싶은 안도감을 느끼기도 전에 장가부터 가게 됐지요.

 

워낙 가진 것 없이 시작하다보니 부부 둘이서 냄비 하나, 수저 두 세트.. 식으로 시작한 단칸 신혼 사글세방은 둘이서 발 쭉 뻗고 자기도 옹색할 정도였습니다.  그때 그 작은 단칸방에 음악을 들려준 것은 회사 근처였던가, 자그마한 전파상에서 구입한 라디오 나오는 포터블 카세트데크였습니다.  메이커가 아마 '백산'인가 그랬습니다.  

 

한참 클래식에 빠져들고 있던 당시 그 작은 단칸방에는 어울리지도 않게스리 차이코프스키 교향곡이 울리곤 했었는데, 한 번은 카세트 테잎을 연속재생 시켜둔 채로 잠이 들어버리는 바람에 다음날 성질머리 좀 있던 주인 아줌마한테 된통 꾸지람도 듣기도 했지요.  ^^  한 1년반 가량 지내던 그집을 나와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제 집 세간살이가 늘어난 것처럼 오디오 가짓수도 덩달아 늘어나기 시작했습죠. 

 

요즘처럼 오디오에 관해 다양한 정보를 쉽사리 구할 수도 없었고, 인터넷 거래 따위는 꿈도 꾸지 못할 시절이었던지라 어디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세운상가에서 고른 것이 인켈의 7010 앰프와 JBL의 컨트롤 5 스피커였습니다.  새로운 소스매체로 CD가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지만, 가격이 비싸기도 했고 전부터 줄창 애용하던 것이 카세트 테입이라 대부분의 컬렉션을 테입으로 했는데, 지금은 완전히 폐물이 되어버려서 라면박스 안에서 잠만 자고 있습니다.  아무튼 JBL의 가장 엔트리급에 속하고 대중적인 스피커인 컨트롤 5로 주로 팝과 락 음악을 많이 들었습니다.

 

당시 가정용 홈씨어터 어쩌구 하면서 AV가 막 인기를 얻고 있던 터라 유행에 편승하고자 그랬던지, 일본 출장 길에 서라운드 앰프를 하나 구입해 왔었는데 그게 산수이 제품이었습니다.  눈이 피로하지 않은 은은한 톤의 금장 앰프였는데, AV보다는 스테레오 성능이 더 좋았던 기억입니다.  이미 사세가 기울고는 있었지만, 그때까지 일본제 스테레오 앰프 황금기를 이끌고 있던 산수이(Sansui, 山水)의 실력이 녹록치 않았던 것이죠.  

 

지금은 비틀거리고 있지만, 한동안 세계를 호령했던 소니(Sony)가 그랬듯이 종전후 가내수공업 수준으로 출발, 1950년대 한국전쟁 특수로 외형을 확장하고 외국 수출용 제품으로 라디오와 초기 리시버류를 만들던 것이 일본 전자제품 메이커들의 정석루트였고, 일본의 고도성장과 그에 따른 국민소득의 증가로 인해 음향기기 산업이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아큐페이즈, 럭스만, 야마하, 데논, 온쿄, 소니, 파이오니아, 마란츠, 테크닉스, 빅터, 켄우드, 나카미치 등 숱한 메이커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사의 기술을 뽐냈습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이르러 최절정기를 구가했던 일산 앰프 메이커들은 서로 엇비슷한 가격대에 엇비슷한 디자인의 제품을 내놓기 바빴고, 그 와중에 엄청난 부품을 투입한 소위 '명기'들이 속속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밥그릇보다 더 큰 대용량 트랜스와 통알루미늄 절삭 노브와 같은 디테일에까지 엄청 신경을 쓴 나머지, 어른이 혼자서 들기에도 버거울 정도의 엄청난 무게를 자랑하는 당시 기기들 일부는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의 기계 만듦새 하나는 참으로 부럽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적자생존의 정글 속에서 아큐페이즈 같은 메이커는 오늘날 하이 피델리티의 대명사로 세계적인 명성을 갖추게 되었지만, 산수이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메이커들도 적지 않습니다.  1944년에 창업한 산수이는 초기에 트랜스 생산으로 시작했다가 1950년대 한국전쟁 특수에 힘입었고, 1960년대에는 베트남 주둔 미군부대 PX 납품용 리시버로 크게 히트하면서 본격적인 앰프 메이커로 뛰어올랐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들어 일본의 버블붕괴와 세계경기 위축, 게다가 아날로그 시대의 종말과 함께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산수이가 1992년에 출시한 프리앰프 C-2302 Vintage 모델.  출시가격이 무려 128만 엔으로 당해년도에 수많은 경쟁사들이 내놓은 동종 모델중 최고가 모델이었고 수많은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런 과정에서 약 30년에 걸쳐 숱한 명기들을 쏟아냈는데, 자사 라인업 중 인티(Integrated) 앰프의 플래그쉽 모델인 07 시리즈가 그중 하나였습니다.   아래 사진은 산수이가 1998년에 내놓은 인티앰프 AU-α707NRA로 산수이가 명맥을 유지했던 시절 최후의 명기 라인업 제품이었습니다.  물론 플래그쉽은 907NRA였습니다만.... 국내에서는 거의 구할 수 없는 제품이지요.  아래 제품 역시 일본에서 중고로 들여온 것이 두어번 정도 손이 바뀌었다가 엊그제 저에게 들어온 녀석입니다.

 

참... 아름답습니다.  비록 눈길을 사롭잡는 메터 창을 가진건 아니지만, 미려한 외형이 참으로 럭셔리합니다.  측면에는 피아노 마감의 우드가 부착되어 있습니다.  8Ω 기준 좌우 130w.  무게 23.6kg.  제가 한동안 사용했던 1989년판 AU-α707L Extra의 직계 후배 뻘입니다만,충실하지만 약간은 투박한 아날로그 음색에서 상당히 세련된 소리를 들려주더군요.   907과는 외형이 똑같지만, 차이나는 점은 스피커 케이블 단자가 WBT제 라는 것과, 출력이 160w고 무게가 33kg으로 훌쩍 무거워졌다는 점입니다.

 

 

아래는 9년 전에 나왔던 AU-α707L Extra.

 

 

 

아무튼, 마눌쟁이 없는 틈을 타서 잽싸게 기계를 들여놓고 이튿날 아침부터 테스트에 들어갔습니다.  사실 앰프 이상으로 시급한 것이 스피커 업그레이드인데, 형편이 그렇다보니 바꾸질 못하고 있습니다만 거실의 TL-6에 물려본 결과 우선 오래된 앰프류 특유의 소소한 잡소리가 없을 뿐더러 깔끔한 소리를 내어줬지만, 130W의 출력에 대한 검증도 필요하다 싶어서 2층 다락방 한쪽 귀퉁이에서 낮잠 자고 있던 매킨토시의 구닥다리 밀폐형 스피커 XR-5에 물려봤습니다.  댐핑은 충분한 지 전혀 어색하지는 않더군요.

 

 

출시된 지 13년 정도되는 제품이지만, 엊그제 나온 물건처럼 상태가 정말 깔끔하다.  일본사람들 물건 사용하는 방식은 본 받을 만 하다.  내수용 제품이라 100V 전용인 것이 한 가지 아쉬운 점.

 

무게 23.6kg.  이놈 들고 좁은 회전계단을 오르내리느라 낑낑거려야 했다. 

 

뒷면.  나름 고급 라인업답게 모든 단자는 금도금에 CD 다이렉트 연결이 가능하다.

 

 

 

비교청취 차원에서 졸지에 역할을 빼앗겨버린 온쿄 분리형 5060을 물려봤다.  CDP까지 다락으로 올릴 엄두도 안나고 해서 대충 듣던 인켈 CDP를 물렸고, 옹색한 다락의 열악한 청취환경을 감안해야 했지만...

 

 

 

 

 

 

** 참고 : 일산 가전음향의 최전성기 시절, 유명 가전회사들이 다투어 내놓은 대표적인 앰프들.  1980년대부터 90년대 사이에 이들의 시장점유를 위한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던지 당시에 나온 제품들은 하나같이 무시무시할 정도로 물량을 투입했음을 알 수 있다.

 

아큐페이즈(Accuphase)의 파워앰프 M-2000(1997년).  출시가격 대당 100만엔으로 모노럴 앰프니 스테레오를 울리려면 최소 2대가 필요하다.

 

온쿄(Onkyo)의 파워앰프 그랜드 인테그라 M-510(1991년).  무게가 63kg으로 아날로그 기술을 들이부었다.

 

파이오니어(Pioneer)의 최상급 인티앰프 A-09(1992).  순 A급 앰프로 35w급이다.  파이오니어는 분리형 플래그쉽 모델로 익스클루시브를 꾸준히 출시했다.  앰프 외에 실력기 스피커들로도 호평받았다.

 

오랜 명성이 밀어주는 실력으로 충성도 높은 매니아층을 거느렸던 빅터(Victor)의 AX-900(1995년).  얼마나 물량을 투입했던지 무게가 33kg이 나간다.

 

야마하(Yamaha)의 분리형 중 프리앰프 CX-10000(1987년).  같은 시리즈의 파워앰프와 CDP까지 일습으로 구하고자 했다면 200만엔이 필요했다.  야마하는 80년대 후반들어 일기 시작한 AV 홈씨어터에 대한 관심을 재빨리 간파하고 시장을 선도해 나가면서 AV 앰프시장을 거의 독식하다시피 했다.

 

일본 가전음향의 강자로 음악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럭스만(Luxman)의 파워앰프 M-10(1997년).  종전의 밀폐형 디자인에서 탈피, 커다란 메타창의 시원한 디자인으로 크게 어필했다.  일본에서 인티 모델인 505F를 사왔다가 얼마 안있어 내친 다음, 아름다운 메타창을 잊지 못하고 509F를 어렵게 구했다가 역시 내쳤다.  오랫동안 후회하고 있다.

 

마란츠(Marantz)의 명기 인티로 회자되고 있는 PM-99SE(1992년).  1년쯤 뒨가는 앰프 양쪽 사이드패널을 피아노 마감한 우드로 변경한 모델 99SE NM이 나와서 더욱 애장가들의 간장을 녹였다.

 

데논(Denon)의 PMA-S10 (2) (1997년).  대충 겉으로 보기에도 무식하게 물량을 투입했음직 하다. 

 

켄우드(Kenwood) 거의 최후의 명기 인티 L-A1(1993년).  1979년 전원분리형으로 나왔던 인티앰프 L-01A의 계보를 잇는는다는 회사의 의지가 이름에 담겨있다.  켄우드는 원래 무전기 회사로 출발해 질좋은 튜너로 명성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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