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3a 내부사진
처음에 AR-3a를 구할 마음을 먹었던건 다니는 오디오포럼에서 알게 되었던 아저씨가 '대편성 음악에 좋은 빈티지 스피커'라 추천을 해줘서였다. 그러나 단서가 하나 붙었었는데 바로 AR-3a의 소리는 녹음 스튜디오에서 듣는 소리가 아닌 콘서트홀에서 15째줄 정도에 앉아 드는 소리라는 것. 한국의 오디오 사이트에서 AR은 주로 '빈티지의 구수한 소리가 좋다' 식의 감상평밖에 보지 않았던 상태였기에 신선한 평이었다.
어차피 비싼 스피커는 글렀고 해서 맘먹고 구해서 복원까지 해서 들어보니 무슨말인지 알것 같다. 어두운 콘서트홀에서 무대와 약간의 거리를 두고 듣는 그런 느낌이 난다. 그래서 마음에 든다. 특히 어두운 밤에 들으면 정말 실감난다.
근데 대체 누가 그런 소리를 한건가 싶어서 좀 알아봤는데 그 당시 스테레오파일지의 J 홀트라는 사람의 리뷰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고 한다. 어드벤트 스피커는 H줄에서 듣는 소리, AR-3a는 M줄, 그리고 KLH 스피커는 R줄. JBL의 경우는 A줄에서 듣는 소리라는 표현.
그런데 그뿐인가? 애초에 스피커 제작자들의 의도는 뭐였을까? 하는 의문이 들더라. 사실 AR-3a은 '제일 정확한 소리를 내는' 스피커라는 마케팅을 썼으니까. 그럼 콘서트홀보다는 스튜디오 사운드가 더 적합한 사운드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아다시피 AR-3a의 사운드의 특징 중 하나가 고역에서 롤오프 (roll-off) 하는 것이다. 칼 같은 스튜디오 사운드랑은 멀다. 그리고 다른 특징 하나가 쏘지 않고 넓게 퍼지는 소리 (wide-dispersion). 그런데 그 정확한 소리라는게 어느 곳에서 듣는 정확한 소리냐는게 중요한것 같다. 녹음 스튜디오에서 듣는거야 칼 같이 정확한 고음과 좁은 이미징이 중요하겠지만, 콘서트홀에서 듣는 소리가 과연 그런 소리인가?
스미스소니언에 전시되어 있는 AR-3 어쿠스틱 서스펜션 스피커의 창시자였던 당시 AR사의 사장 에드가 빌쳐는 클래식 음악 애호가였던 모양인데 AR-3a는 이 어쿠스틱 서스펜션 기술을 토대로 로이 앨리슨이라는 기술자가 설계한 스피커다. 그렇다면 이 로이 앨리슨은 소리에 대해 어떤 취향을 갖고 있었을지 궁금할 수 밖에 없다.
AR-3a의 디자이너 로이 앨리슨
로이 앨리슨이 보스톤 오디오 소사이어티에 1973년 썼던 글을 발췌해본다.
공기는 고역을 롤오프 시키고 특히 건조한 공기에서는 그 현상이 더 심하다 - 이러한 효과는 콘서트홀 보다는 가정주택에서 더 중요한데, 이 고역의 손실이 공기를 타고 전해지는 거리감을 늘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스피커가 낼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대편성 사운드를 위해서는 트레블에서 그래프가 점차적으로 내려가야 콘서트홀에서 느끼는 고역의 손실을 재생할 수 있다).
로이 앨리슨은 그래서 AR을 떠나 자신만의 회사를 차려 앨리슨 원이라는 스피커를 내놓았을때 스피커에 '심포니 홀 소리를 위한 고역 롤오프' 셋팅을 따로 마련했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2005년 스테레오파일과의 인터뷰에서 말하는 내용이 재밌다.
호주에서 박사학위를 위한 논문을 쓰던 오디오 기술자 딕 스몰이 다른 오디오 기술자인 네빌 티엘과 함께 미국에 강연여행을 왔을때 그들은 내 집에서 같이 저녁을 먹었어요. 식사 후 그들은 나와 같이 내 앨리슨 원 스피커를 들었죠.
그들은 공손했지만 그다지 열광적인 반응은 아니었습니다. 알고보니 그들은 아주 정확한 이미징을 추구하는 커먼웰스 성향의 스피커 소리에 익숙했던 거죠.
나는 콘서트홀의 분위기 (ambiance) 를 가장 최대로 살려내기 위해 넓게 퍼지는 소리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난 '스위트 스팟'에 연연하고 싶지 않거든요. 그리고 아주 정확한 이미징 보다는 콘서트홀에서 들을 수 있는 몸을 감싸는 소리를 (envelopment) 가장 근접하게 표현하는 소리를 추구했습니다.
내 생각에 정확한 이미징은 어쿠스틱 음악 보다는 인공적인 음악에 더 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대로 정확한 이미징이 필요한 솔로 악기나 보컬을 빼고 말이죠. 몸을 감싸는 소리를 위해선 에너지가 넓게 퍼지는 역할이 중요해요.
하이엔드 스피커를 집안에 두고 들어보진 못했지만 오디오로 맨 앞줄에서 듣는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재현한다는 것에 회의감이 있다. 당연한것이, 스피커 두짝으로 수많은 악기들이 바로 앞에서 개별적인 소리를 내는것은 불가능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지. 아무리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해도 그건 무리다. 어떻게 자기집 방안에서 바로 앞 무대의 오케스트라를 그려낼 수 있겠는가.
하지만 무대에서 거리가 어느 정도 있는 좌석에서 드는 소리는 어떨까? 여기선 확실히 악기의 배치나 공간에 대한 구분이 엄격하지 않다. 대신 콘서트홀에서 듣는 소리의 분위기의 재현이 중요해지는데 이것은 어느정도 인공적으로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그것을 이미 40년전 에드가 빌쳐와 로이 앨리슨이 방향을 하나 제시한 셈이고. 다만 이런 접근방식이 스튜디오에서 음원소스를 '있는 그대로' 듣는것이 목적인 현대의 하이파이에선 접목시키기 어려운 점이 있기에 오히려 이런 빈티지 스피커에서 해답을 찾는게 아닌가 싶다.
고역의 롤오프로 거리감을 극대화 시킨다는 것은 어찌 생각해보면 스피커의 덕목이다. 한음 한음 하나 거리감 없이 정확하게만 듣고 싶다면야 성능 좋은 이어폰이나 헤드폰이 제격일 것이다. 하지만 스피커로 음악을 듣는다면 역시 공기를 타고 전해지는 소리의 거리감을 즐기는것 아닌가.
빈필의 전용 콘서트홀 무지크페라인
게다가 그런 고역의 롤오프와 넓게 퍼지는 소리를 감안하고 나면 AR-3a의 사운드는 현대의 스피커 못지않게 정확한 소리를 들려준다. 그렇기에 자연스러우면서도 정확한 사운드의 구현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고역이 단지 후지기만 한 스피커를 들으면 멍청한 소리가 정말 답답해서 듣기 어려워진다. 특히 저역이 풍부하고 깊은 AR-3a의 고역이 후지기만 하다면 밸런스 문제로 들어줄 수가 없을 것이다. 대편성 음악을 주로 듣고 오디오로 추구하는게 대편성 음악의 재현인 나에겐 큰 돈 안들이고도 추구하는 이상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점에서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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