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utsche Grammophon 도이치 그라모폰
http://history.deutschegrammophon.com/ko_KO/home
최근에는 LP 시절의 녹음들을 DG Originals 시리즈로 재발매
음반회사들의 흥망성쇠를 보니, 레알마드리드나 FC바르셀로나 같은 스포츠 구단들의 스타선수 영입 경쟁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950년대 세계 최고의 교향악단 : 베를린 필 하모닉스
그리고, 베플린필의 상임 지휘자 : 푸르트벵글러, 그리고, 떠오르는 신예이자 푸르트 뱅글러 사후 베를린 필의 상임지휘자가 된 카라얀을 중심으로 독일의 DG 영국의 EMI , DECCA, 미국의 RCA 등의 각축전과 함께 클래식 음반사가 궤를 함께하고 있다.
DG(독일 1898년~ / Deutsche Grammophon) : 1950년대 후반~1980년경까지 스타 지휘자들과 독점 계약함으로써, 명연주를 거의 독점했다. 베를린 필과 독점 계약. 상임 지휘자 카라얀.
카라얀-베토벤, 브람스 교향곡 전곡
뵘 - 모차르트, 슈베르트 교향곡에 뵘을,
요훔-브루크너 교향곡에 요훔을,
쿠벨릭-드보르작 교향곡에 쿠벨릭을,
므라빈스키와 카라얀 - 차이코프스키
EMI (영국 1931년~/ Electronic & Music Industries Ltd.) 2012년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와 유니버설 뮤직 그룹으로 분할 인수.
.DECCA (영국 1929년~/오페라 위주 녹음. 음질하면 DECCA 라고 할 정도로, 녹음 수준이 뛰어났다. DG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지휘자보다 프로듀서에 힘을 줬다는 얘기다. 음파탐지기술 덕에 광대역레코딩(ffrr)이 가능해져 음질로는 동시대 최고를 자랑한다. 1955년에는 스테레오 녹음을 전면 도입하였는데, 이는 메이저 음반사 중에서는 RCA에 이어 두번째였다. 경쟁사인 EMI와 도이체 그라모폰(DG)에서는 3~4년 후에야 본격적으로 스테레오를 채택했다. 제아무리 도이체 그라모폰(DG)에 OIBP라는 기술이 있어도 이 ffrr을 당해낼 수는 없었던 것. 나중에 ffss라는 더 발전된 기술도 사용되었다.
데카 경영진이 타사에 비해 근본적으로 지휘자의 중요성을 덜 인식하고 있었다고 보여진다. 데카의 명프로듀서인 커쇼의 자서전에 보면 카라얀 길들이기의 예가 나오는데, 이를 보면 데카측은 프로듀서와 지휘자가 기본적으로 동등한 지위에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고 볼 수 있다. DG의 경우 프로듀서들 중에 지휘자 출신이 몇명 있을 정도였지만 DG의 프로듀서들은 지휘자의 권위를 존중해 주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DECCA는 50~60년에 걸쳐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전속계약을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걸맞는 네임드 지휘자를 보유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음반 판매고에서 경쟁사인 DG에 크게 밀렸다.
DG에 비해서 소속 지휘자의 이름값은 부족하지만 오페라 분야에서 독보적인 두각을 나타낸 덕분에 많은 명반을 내놓은 음반사다. 즉 말년의 키르스텐 플라그슈타드, 마리오 델 모나코, 레나타 테발디, 비르기트 닐손, 조안 서덜랜드, 루치아노 파바로티, 미렐라 프레니, 니콜라이 갸우로프 등 많은 오페라 스타들과 계약했었다. 아직까지도 서덜랜드-파바로티의 벨칸토 오페라와 솔티의 링 사이클 녹음 등은 많은 오페라 팬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현재도 체칠리아 바르톨리, 르네 플레밍, 요나스 카우프만 등의 최상위 오페라 가수들을 보유하고 있다.
RCA (미국 1901년~/ Radio Corporation of America) 가장 먼저 스테레오 음반을 도입. BMG로 합병.
1950년대 레코딩 기술 : DECCA , RCA > DG > EMI
전후 DG는 베를린 필과 활동이 가능한 지휘자들을 중심으로 영입하였다. 오이겐 요훔, 칼 뵘, 페렌츠 프리차이 등과 계약을 맺었고 이들은 50년대 DG의 간판 지휘자들이었다.
ㅇ 베를린 필의 푸르트벵글러와 DG의 짧은 동거기간 : DG는 베를린 필의 상임지휘자였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계약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당시 훨씬 규모가 큰 회사였던 영국의 EMI에 밀렸다. 1951년에 푸르트벵글러와 EMI의 프로듀서 월터 레그와 불화를 겪다가 재계약에 실패한 틈을 타 DG가 푸르트벵글러에게 접근했고, 푸르트벵글러가 자신의 교향곡 2번도 같이 녹음하게 해달라는 조건을 받아들여 단기 녹음 계약을 성사시켰다. 푸르트벵글러의 교향곡 2번 외에 슈베르트의 교향곡 9번, 하이든의 교향곡 88번이 그 해 12월에 녹음되었다.[6]
그러나 곧 EMI가 레그 대신 로렌스 콜링우드를 프로듀서로 붙여주고 계약금 인상 등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여 푸르트벵글러와 계약을 성사시키면서 은 끝났다. 푸르트벵글러가 DG에서 남긴 음반들은 지금까지 상당한 명연주로 평가받고 있다. 게다가 EMI와는 달리 푸르트벵글러 본인의 수족인 베를린 필과 녹음할 수 있었고, 녹음 음질 또한 EMI보다 DG가 좋았다. 그런 점에서 DG와 푸르트벵글러가 많은 녹음을 남기지 못한 것은 음악애호가 입장에서도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ㅇ 진격의 DG - 1958년 EMI 로부터 카라얀 영입!
50년대까지만 해도 DG는 클래식 음반사 중에 후발 주자[7]로 인식되고 있었다. 당시 DG의 녹음 기술은 EMI보다는 확실히 좋았고, CBS[8]보다 괜찮았다고 볼 수 있지만, DECCA나 RCA에는 미치치는 못했다. 음반사의 인지도는 독일지역에 국한되어 있었다.
50년대 중반 향후 DG의 운명을 바꾸는데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 발생했는데, 바로 카라얀이 베를린 필의 상임지휘자에 취임한 것이었다. DG는 EMI에 소속되어 있던 카라얀에게 회사의 명운을 건 파격적인 제안를 하고 58년 결국 카라얀과 계약을 성사시켰다. 63년에 완성된 카라얀과 베를린 필의 베토벤 교향곡 전집은 전무후무한 대성공을 거두었고 DG에 일대의 전환점을 마련해 주었다.
DG는 카라얀뿐만 아니라 61년 요훔의 뒤를 이어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에 취임한 라파엘 쿠벨릭을 영입했다. 60년대 DG는 소속 지휘자들을 중심으로 교향곡과 관현악 중심으로 레퍼토리를 구축하였다. 특히 유명 작곡가의 교향곡 전곡 녹음을 추진했다.
카라얀과는 베토벤과 브람스 전곡, 차이코프스키 후기 교향곡을,
요훔과는 브루크너 전곡 및 하이든 후기 교향곡을,
뵘과는 모차르트, 슈베르트 전곡을,
쿠벨릭과는 슈만, 드보르자크, 말러 전곡 녹음을 진행했다.
DG는 교향곡과 관현악 분야를 중심으로 레퍼토리를 구축한 반면, 오페라의 녹음에는 상당히 소극적이었다. 오페라 중심으로 레퍼토리를 구축했던 데카와는 상반되는 행보였는데, 결과적으로는 DG의 전략이 주효했다고 볼 수 있다. 오페라는 교향곡, 관현악에 비해 제작 비용이 훨씬 많이 들었기 때문에 채산성이 결코 좋지 않았다.
DG가 오페라를 전혀 녹음하지 않은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데카 등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다는 것이다. 컬럼비아(CBS) 등 미국 음반사에 비하면 DG도 오페라 음반이 풍부한 편이었다. DG가 독일, 오스트리아 음악 중심으로 아티스트를 영입하고 레퍼토리를 구축했기 때문에 이탈리아 오페라 녹음을 우선 순위에 두지 않은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모차르트, 바그너 등 독일, 오스트리아 작곡가들의 경우 DG도 어느 정도 오페라 녹음에 적극성을 띄기도 했다. 또 교향곡, 관현악 부문 레퍼토리 구축이 끝난 70년대 후반 이후에는 DG도 정책을 바꿔서 오페라 녹음에 더 적극적으로 임하기 시작했다. 한편 DG는 오페라에는 소극적이었지만, 오라토리오, 미사 등의 대규모 합창곡의 녹음은 활발히 진행했다.
60년대 주요 교향곡 전곡 중심의 레퍼토리 구축하면서 세계적인 레이블로 도약한 DG는 70년대에는 클래식계 최고의 레이블로써의 위상을 확립하였다. 이미 유명한 지휘자들을 대거 보유하고 있었지만 DG는 유망한 지휘자들까지 닥치는 대로 영입하여 지휘자 왕국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60년대 후반에 신예지휘자 아바도와 계약을 맺었고, EMI 소속의 줄리니, 필립스 소속인 보스턴 심포니의 오자와 세이지, CBS 소속인 레너드 번스타인, 신예 카를로스 클라이버 등을 영입했다.
50~60년대 동안 DECCA와 전속계약으로 묶여있던 빈 필이 1970년 DECCA와 전속을 해지하면서 DG에게 큰 기회를 제공했다. 뵘, 번스타인, 카라얀, 아바도 등 빈 필의 핵심지휘자들을 모두 DG가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70년 뵘과 빈 필의 베토벤 교향곡 전곡 녹음이 시작되었고, 이후 DG는 뵘, 번스타인, 카라얀, 아바도, 레바인 등의 지휘자를 통해 빈 필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70년대 중반 : 오페라 녹음 적극 추진과 재녹음 추진. 세계화 추진( 아바도, 줄리니, 번스타인, 바렌보임, 오자와 영입 )
경영진이 교체되면서 정책 변화가 있었는데, 가장 큰 내용은 기존에 자제해왔던 오페라 녹음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로 한 것과 동일 지휘자에 의한 동일 레퍼토리의 재녹음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다른 음반사보다 훨씬 많은 거장 지휘자들을 거느리고 있었던 DG는 지휘자들이 녹음하고자 하는 레퍼토리와 회사의 이익과의 접점이 되는 곡을 찾아 타협해야 했는데, 이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카라얀은 60년대부터 과거 녹음을 재녹음하고 브루크너 교향곡을 녹음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는데, 요훔과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을 녹음을 진행하고 있던 DG는 중복 투자를 하기 힘든 형편이었다. 이에 카라얀은 69년에 EMI와 별도 계약을 맺고 브루크너 교향곡을 녹음했을 뿐만 아니라 DG에서 몇년전에 녹음했던 차이코프스키 3대 교향곡을 EMI에서 다시 녹음했고 이 음반들은 불티나게 팔렸다. 이는 결과적으로 DG의 정책에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는데, 거장 지휘자들의 동일 레퍼토리르 재녹음하는 것을 허용하기로 한 것이다. 70년대 중반부터 카라얀은 기존에 녹음했던 레퍼토리들을 재녹음하기 시작했다. 차이코프스키 3대 교향곡, 베토벤과 브람스 교향곡 전곡 등이 다시 재녹음되었다. 칼 뵘도 빈 필과 모차르트 교향곡 전곡을 재녹음하기 시작했다.
60년대까지 독일 지휘자를 중점적으로 영입했지만, 70년대부터 세계화를 위한 포석으로 아바도를 필두로 줄리니, 번스타인, 바렌보임, 오자와 등 다양한 지역의 지휘자들을 영입하였다. 80년대에도 레바인, 시노폴리, 정명훈 등을 영입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과포화된 지휘자 라인에 대한 정리도 이루어졌는데, 오자와가 필립스로 이적한 것을 필두로 바렌보임, 줄리니 등이 타사로 이적하기도 했다. 아바도도 잠시나마 EMI로 완전 이적했으나 다시 DG로 돌아왔다.
90년대 후반 음반계에 장기 불황을 겪으면서 DG도 예전같지 않았았는데, 그래도 다른 음반사들보다는 나은 형편이었다. 90년대에 틸레만, 2000년대에 구스타보 두다멜(베네수엘라)을 영입한 것 말고는 딱히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다. 2002년에 새로 베를린 필에 취임한 래틀이 EMI 소속이었기 때문에 베를린 필을 EMI에 빼앗겼지만 워낙 음반시장이 불황이라 EMI에서 베를린 필의 음반이 별로 출시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9]
나중에 폴리그램에 데카도 넘어오게 되고, 이후 음반/음악계에 불화가 생기면서 98년 캐나다의 주류회사인 시그램에 통째로 인수되며 지주회사 시그램의 계열사인 유니버셜 뮤직안에 있는 데카 뮤직 그룹에 편입된다.
** 2000년대 들어 한국 아티스트들 중에서도 이 레이블의 딱지를 단 음반들을 내놓고 있다. 상술한 지휘자 정명훈을 비롯해 피아니스트 김정원과 백건우, 서혜경, 임동혁,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첼리스트 여미혜, 콘트라베이시스트 성민제, 소프라노 조수미 등이 그 예. 다만 이들의 음반은 정명훈의 것을 제외하면 한국 한정으로만 라이선스를 받아 생산/유통되고 있어서, 본사 홈페이지에서는 검색되지 않으니 주의.
DECCA
1920년대에 세워진 영국의 클래식 음반사다. 군사쪽 기업의 데카도 있다고 들었는데, 원래 계열이었으나 분리 된 것 같다.
음질에 있어서는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가장 앞선 축에 속했던 음반사라 할 수 있다. 데카의 직원들은 이공계열 출신이 대부분이었는데, 음파탐지기술 덕에 광대역레코딩(ffrr)이 가능해져 음질로는 동시대 최고를 자랑한다. 1955년에는 스테레오 녹음을 전면 도입하였는데, 이는 메이저 음반사 중에서는 RCA에 이어 두번째였다. 경쟁사인 EMI와 도이체 그라모폰(DG)에서는 3~4년 후에야 본격적으로 스테레오를 채택했다. 제아무리 도이체 그라모폰(DG)에 OIBP라는 기술이 있어도 이 ffrr을 당해낼 수는 없었던 것. 나중에 ffss라는 더 발전된 기술도 사용되었다.
하지만 아티스트의 영입이나 녹음 레퍼토리의 선정 등 전략적 측면에 있어서는 DG는 물론, EMI 등 다른 경쟁사에 비해 뛰어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냉정하게 말해 경쟁사에 비해 경영진들의 전반적인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고 보여진다. 타 음반사에 비해 오페라에 녹음에 많은 공을 들인 것이 특징으로 오페라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비용이 적게 드는 교향곡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여 최고의 음반사로 성장한 DG에 비해서는 효율성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음반사의 네임 밸류에 비해 의외로 거물급 지휘자들를 영입한 적이 거의 없다. 지휘자 왕국 DG와는 비교조차 어렵고, EMI는 물론, 미국의 CBS(현 소니)[1], RCA[2], 네덜란드의 필립스[3]에도 밀리는 감이 있다. DECCA 소속의 지휘자로는 게오르그 솔티, 에르네스트 앙세르메, 리카르도 샤이, 이스트반 케스테츠, 크리스토프 도흐나니[4], 샤를 뒤뜨와 등이 있다. 그밖에 단기간 DECCA와 계약을 맺은 지휘자들도 꽤 있다. 빈 국립 오페라극장의 음악감독 시절 단기계약을 맺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젊은 시절의 주빈 메타, 중년기의 로린 마젤 등이 대표적이다.
지휘자에 대해 극단적으로 소극적인 투자를 한 것은 DECCA 경영진의 큰 착오이자 패착이었다고 할 수 있다. DECCA는 50~60년에 걸쳐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라는 세계 최정상급 오케스트라와 전속계약을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걸맞는 네임드 지휘자를 보유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음반 판매고에서 경쟁사인 DG에 크게 밀렸다. 60년대에 DECCA는 빈 필과의 녹음에서 베토벤 교향곡 전집에 슈미트-이셰르슈테트를, 브람스, 모차르트, 슈베르트, 드보르작 교향곡에 케르테츠를, 브루크너 교향곡에 솔티와 메타를, 차이코프스키 3대 교향곡에 마젤을 투입했는데, DG에서 베토벤, 브람스 교향곡 전곡에 카라얀을, 모차르트, 슈베르트 교향곡에 뵘을, 브루크너 교향곡에 요훔을, 드보르작 교향곡에 쿠벨릭을, 차이코프스키 3대 교향곡에 므라빈스키와 카라얀을 기용했던 것과 비교해 보면 무게감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다.
데카 경영진이 타사에 비해 근본적으로 지휘자의 중요성을 덜 인식하고 있었다고 보여진다. 데카의 명프로듀서인 커쇼의 자서전에 보면 카라얀 길들이기의 예가 나오는데, 이를 보면 데카측은 프로듀서와 지휘자가 기본적으로 동등한 지위에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고 볼 수 있다. DG의 경우 프로듀서들 중에 지휘자 출신이 몇명 있을 정도였지만 DG의 프로듀서들은 지휘자의 권위를 존중해 주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5]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DG에 비해서 소속 지휘자의 이름값은 부족하지만 오페라 분야에서 독보적인 두각을 나타낸 덕분에 많은 명반을 내놓은 음반사다. 즉 말년의 키르스텐 플라그슈타드, 마리오 델 모나코, 레나타 테발디, 비르기트 닐손, 조안 서덜랜드, 루치아노 파바로티, 미렐라 프레니, 니콜라이 갸우로프 등 많은 오페라 스타들과 계약했었다. 아직까지도 서덜랜드-파바로티의 벨칸토 오페라와 솔티의 링 사이클 녹음 등은 많은 오페라 팬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현재도 체칠리아 바르톨리, 르네 플레밍, 요나스 카우프만 등의 최상위 오페라 가수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후 폴리그램에 합병했으며, 나중에 유니버셜 뮤직 그룹에 통째로 넘어가게된다. 이 때 정체성 확립의 차원에서 정통 클래식은 DG, 크로스오버/성악은 데카가 맡게되는데.. 이 때부터 데카클래식의 역할은 극도로 줄어들며, 크로스오버는 데카레코드가 맡게된다. 아무튼 광고음악으로 알려졌던 그 본드라는 그룹도 이 쪽 소속이다(...) 의상이 조금 부담스러운데 그건 그렇게 마케팅을 해서 팬들을 포섭하기 위해서 라고하는데.. 실상은 정 반대로 나갔다..[6]
필립스 클래식은 데카에 합병되어 사실상 데카의 내부 상표가 돼 버렸다. 이 상표는 2010년대 들어 필립스사의 요청으로 인해, 음반 발매에서의 필립스 로고 사용을 못하게 되었으며 필립스 로고 대신에 데카의 로고를 달고 발매를 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필립스 로고가 찍힌 악성재고 예전 발매반들을 가끔 입수할 수 있다. 이쪽도 DG 본가와 마찬가지로 필립스 디 오리지날 라인을 전개하다가 지금은 데카 디 오리지날로 그 명맥을 잇고 있다. 또한 필립스 DUO 시리즈가 2CD임에도 불구하고 가성비가 낙소스 뺨을 후려칠 정도로 좋았다. 2007년 경에 교보핫트랙스에서 필립스 DUO 절판 설레발을 쳤는데 그 이후에도 매장에 재고가 그득그득 쌓여있어 뭇 음덕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다가, 정말 절판이 된 것인지 5년 정도 지나자 입수하기 굉장히 어려워졌다.
여담으로, 비틀즈가 유명해지기 전에 이 회사에서 오디션을 본 적이 있는데, 당시에 데카 레코드에선 비틀즈같은 밴드들은 유행이 다해 없어질 것이라 생각하여 비틀즈와 계약하지 않았다.[7] 결국 비틀즈는 EMI 산하의 팔로폰과 계약하게 된다. 지금와서 보면 데카로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걷어 차버린 셈이다. 그야말로 연예계 분야 최강의 새옹지마 근데 이건 황금알 낳는 거위 정도가 아니라 마이다스의 손모가지 이라고 해야 할듯 그나마 꿩 대신 닭으로 롤링 스톤즈를 데려왔고 히트쳤으니 다행...이려나?(...) [8]
비틀즈의 이 데카 오디션 음원은 나중에 재발매되었는데 대부분은 커버곡이지만 레논/메카트니의 자작곡들도 일부 있다
RCA(Radio Corporation of America, 1919-1986)는 1919년 GE에 의하여 설립되었으며 1929년 Victor Talking Machine Company를 매수, 합병함으로서 탄생한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의 음반 매이커이다. LP가 탄생되면서 RCA Victor의 레이블도 시기에 따라 많은 변천을 보인다. 대표적인 레이블을 소개한다.
1. Red Seal LM 시리즈 (사진1): 1950-54년 사이에 사용된 레이블. LM은 ‘long-play microgroove'의 이니셜로 음원은 모두 모노 녹음이다. 초기의 음반은 무겁고 딱딱한(heavy and rigid) 반면 후기의 음반은 가벼워져 약간은 구부릴수도 있다(lighter and flexible). 적갈색 바탕에 금색 혹은 금-은색을 혼합한 레터링이거나(1950-51년 발매) 적갈색 matte 바탕에 실버 레터링(1951-54년 발매) 되어있다. LM1000(Wagner Siegfired Act3, Rochester Phil, Leinsdorf)이 1950년에 처음으로 발매됨.
2. Red Seal LCT 시리즈 (사진2): 1951-54년 사이에 사용된 레이블. 음원은 모두 모노 녹음이며 골드 또는 은색이 감도는 골드 바탕에 적색으로 레터링 되어있다.
라프마니노프, 크라이슬러 등의 연주를 이 시리즈를 통하여 들을 수 있다.
3. LHMV 시리즈 (사진3): 1954-56년 사이에 사용된 레이블. 모두 모노 녹음으로 음원은 영국 HMV의 ALP와 같다. 적색-은색의 바탕에 은색-적색의 레터링으로 되어있다. LHMV1(Stravinsky Rite of Spring, Markevitch, Philharmonia Orch)은 1954년에 처음으로 발매됨. 푸르트뱅글러, 젊은 날의 메뉴힌 등 명반들이 있지만 ALP에 비해 자켓의 장정이나(ALP와 같은 것도 있다) 음질은 다소 떨어진다.
4. Plum dog 시리즈 (사진4): 1954-58년 사이에 사용된 레이블. 음원은 모두 모노 녹음이다. 적색 또는 황갈색 바탕에 실버 레터링으로 인쇄되어 있다. 초기 레이블에는 nipper dog 아래에‘new orthophonic high fidelity', 후기에는 ’high fidelity'라고 인쇄되어 있다. 초기의 명반으로는 1954년 발매된 R Strauss의 Also sprach Zarathustra (Reiner, Chicago Symphony Orch, LM1806)를 들 수 있다.
5. Shaded dog LM, LSC 시리즈 (사진5): 1958-64년 사이에 LM(long-play monaural recordings), LSC(long-play stereophonic classical) 시리즈에 사용된 레이블. 모노인 경우 ‘new orthophonic high fidelity'(nipper dog아래)/long 33 1/3 play'(레이블의 아래쪽)(1958-60년), 'new orthophonic high fidelity'(1960-62년), 'long 33 1/3 play'(1962년), 'mono'(1962-64년), 'dynagroove'/'mono'(1963064년) 등 시기에 따라 로고가 다르다.
LSC 시리즈는 ‘living stereo’가 특히 유명하다. 레이블의 아래쪽에는 ‘living stereo'(5/32인치 크기, 1958-59년), 'living stereo'(13/64인치 크기, 1959-62년), 'stereo'(13/64인치 크기, 1962-64년), 'living stereo'/'dynagroove'(1963-64년) 등으로 레터링 되어있다. 1958년 Tchaikovsky Symphony 6번(Monteux, Boston Symphony Orch)이 LSC1901로 발매되었으며 이후 다양한 장르의 명연주 명반들이 발매되었다.
6. White dog 시리즈 (사진6): 1964-68년 사이에 사용된 레이블. shade dog 시리즈 음반들이 white dog로 재발매 되었으며 1960년대 중반 이후에 녹음된 음원들이 주로 white dog로 발매되었다. LM(모노) 시리즈는 레이블 아래쪽에 9/64인치 크기로 ‘mono', 'monaural', mono dynagroove' 등 시기에 따라 다른 로고로 인쇄되어 있다. LSC(스테레오) 시리즈는 같은 크기로 시기에 따라 'stereo', 'stereo dynagroove'로 레터링 되어 있으며 1967-68년에 발매된 음반에는 ’dynagroove stereo miracle surface'로 다소 긴 로고가 있다.
7. LDS 시리즈 (사진7): LD(모노), LDS(스테레오)시리즈의 레이블. 'Long-play Deluxe Stereophonic Recordings'로 자켓과 insert note는 모두 스위스의 미술전문 인쇄사인 Soria에서 인쇄하여 매우 고급스러우며 소장가치도 크다. 이 시리즈에도 레이블 아래쪽에 13/64인치 크기의 레터링으로‘mono', 'living stereo', 'stereo'(LSC와 연대는 거의 같다) 등의 로고가 인쇄되어 있다.
8. Red seal (without dog): 1968-76년 사이에 사용된 레이블이다. 최후기의 레이블로 nipper dog이 사라지고 없다. 음질은 차치하고라도 반질이 대체로 조악하여 수집가들에게 별 인기가 없다.
http://hifimusic.co.kr/index.php?mid=musicshow&page=59&document_srl=104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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